J전무, 그는 누구인가.
사장-부자장-전무-상무-이사. 임원의 서열이다. 사장 바로 밑이 전무이다. 회사에서 보통 넘버3 레벨이다. (나같은 쪼렙이 아니다.) 사업관리 그룹장이 J부장이란 사람이 있었다. 기차 만들던 H사에서 부회장님의 간택(?)으로 스카우트 되어 왔다. 뒷배가 든든하다고나 할까. 그 부장님의 전직 회사는 엄하기로 유명한 회사다. 현재는 그렇지 않겠지만 옛날에는 전직원이 마라톤을 해야 했고, 휴일에도 풀 뽑으러 출근을 시킨다는 그 회사 출신이다. 회사가 아주 군대 같다. 그 부장님이 그룹을 이끌면서 말 안 듣고, 일 못 하는 직원들은 시장에 방출하였다. 시장이란 자신의 부서에서 일을 더럽게 못해서 타부서에서 그 직원을 데려갈 부서가 있는지 확인하는 곳이다. 그래서 타부서에서 일손이 모자라서 그 직원을 데려 갈 수도 있고, 다른 부서 팔려가지 못하면 폐기처분되어 영영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시장 방출 직원이 매년 몇 명씩 나오는 부서다. 그리고 이 부장님 회사에 충성을 다하신다. 저녁에 보면 세수하시고, 복도에서 수건으로 얼굴 닦으시며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신다. 집에를 안 가신다. 그래서 그런지, 오너에게 잘 보였는지 아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지 1년만에 2계급 진급하셨다. 내가 볼 땐 냉정하고 독단적인 분이셨는데 밑에 직원들도 다 집에 보내시고... 모름지기 오너에게 잘 보여야 한다. 회사안에서도 정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던 이분에게 내가 2번이나 당했다.
설계되지 않은 채 제품제작하기
첫 번째 사건은 앙카 볼트 사건이다. 구매에서 철골 아이템을 관리하던 때에 땅에 박는 앙카 볼트에 관해서 문제가 터졌다.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문제였다. 발주처가 중국인데 중국 그림(도면)그리는 녀석들이 전체도면 1장만 달랑주고, 디테일은 우리 회사에 맡긴다. 도면이야 설계에서 그리면 되는데 문제는 이 볼트 크기가 규격(ANSI Code)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로 볼트 직경은 M24, M26 등으로 표기한다. 거기에 나사산 간격을 Pitch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P3, P4 등으로 표시한다. 볼트 규격에 따라 피치간격도 달라진다. 그런데 M24도 있고, M26도 규격에 있는데 M25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볼트다. 볼트 직격을 먼저 설계하고 거기에 맞춰 볼트를 만들어라고 하니 없는 규격의 볼트도 만들어서 납품하란다. (설계강도상 M25가 맞더라도 규격에 없으니 그 치수보다 더 큰 치수 M26를 택해야하지만 중국애들 그런 거 모르겠단다. 다른 회사는 그냥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시키는 대로 하란다.) 우리 설계가 그런 건 없다고 안 한다고 회의하고 그 날 집에 갔다. 설계가 확정되어야 구매가 되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J전무가 나를 부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에게 “이렇게 할거면 보따리 싸라.” 밑도 끝도 없다. 원래는 내가 초사이언인으로 변신해서 말대답 따박따박 해야하는데 이 인간의 성격을 미리 알고 있거니와 그 때 이미 난 번아웃 현상의 초기단계였다. ‘그래, 날 잡솨라.’ 듣고만 있는다. 왜 불려왔는지도 모르는데 집에 가라니... 이 인간 본성이 글러 먹었다. 대꾸도 하지 않고 앉아서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전무. 이제 업무 파악한다. 내가 내 손에 있지도 않은 걸 어떻게 할까. 내 손에 있어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요리를 하지. 내 설명을 다 듣고 미안하단 말은 절대 안 한다. 말하는 게 글러 먹었다. “내가 너한테 보따리 싸라는 말은 니가 최전선에 가서 책임감을 갖고 직접 해야 된단 말이다.” 이게 사과인가? 아니다. 귤이다. 니 방구다. 이렇게 하니 니 밑에 얘들이 집에 가지. 너 혼자 잘 먹고 잘살아라. 퉤퉤퉤...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약속
두 번째, Silo라는 기자재 제작을 군산에 한 업체에 아웃소싱했다. 구매에서 내가 하는 일이 외주제작이다. 철골업체에 상주해 있다 보니 다른 아이템을 못 챙겼다. 사일로 납기가 안 나온다. 페인트 칠하면서 납품해야 할 정도로 공정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거리가 300키로미터가 넘는 길을 내가 나선다. 윗선에서 시켰는지 J전무도 업체를 방문했다. 회의를 한다. J전무가 업체 관리자들에게 말한다. “어떻게든 납기를 맞추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줄 것이고, 장비가 필요하면 장비를 대주겠습니다. 필요한 걸 다 말하세요.” 이 말에 업체 관리자는 야간작업해서 납기를 맞추겠다는 말을 한다. 모든 일은 어차피 돈이다. 야간에도 작업하기엔 수주한 금액이 적으니 야간작업비용은 발주처에서 부담을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납기를 맞춘다. 작업이 끝나고 업체관리자가 J 전무에게 비용처리를 해달라고 전화를 했는가 보다. J 전무 나한테 전화는 못 하고 메일을 보낸다. ‘xx 업체 추가비용은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구매와 먼저 협의하세요.’ 한 줄 메일을 보낸다.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지만 욕이 나온다. 자신이 말한 내용을 지키지 않으려는 개수작이다. 나와 업체는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지만 내가 직접 J 전무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하라고 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지 입으로 한 이야기를 지키지 않으려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하지만 너무나 치사하다. 대기업 갑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보고 있다. 회사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어느 회사에서든 지랄 같은 사람이 꼭 한 명 이상은 있다. 만약 없다면 그건 나’라고…. 정말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정치를 잘해야 저 위에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내가 하산한 이유다. 내가 정치력이 없다.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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