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설 나의 성장기
나는 초등학교 (내가 다닐 땐 사실 국민학교였는데 졸업할 때쯤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를 다녔을 때는 사실 공부는 거의 안 했다. 공부 안 해도 도덕은 거의 항상 100점이 나왔고, 국어, 수학 점수는 별로 안 좋았을 거라고 짐작은 한다. (불리한 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네에서 열심히 딱지치기하고, 제기차기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니 엄마가 동네에 있는 ‘학원’이라는 데를 데려갔다. 중학생이 되면 이제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더라. 학교와는 다르게 한 반에 열 명정도였던 거 같다. 90년대이니깐 학교에는 한 반에 50명 정도였는데 학원이라는 데는 10명 정도이니 공부를 자연스럽게 한 거 같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니 처음에는 50명 중에 20등 정도 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계속 공부를 하니 10등 안에는 들어왔다. 중학생일 때, 공부를 좀 하니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진학을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공부 잘 하면 인문계, 공부 못 하면 실업계(공고)를 갔다. (지금도 그런가?) 고등학교에 가니 과목 수도 많아지고, 수학도 공통, 1, 2로 3과목이나 다름없었다. 언어도 영어에 문학, 국어 등 여러 과목으로 세분되어 있었다. 중학교 공부방법과는 다르게 해야 하나 나의 수준은 거기까지였다. 50명 중에 절반 정도 수준의 성적이었다. 대학은 가야 하나? 그때 당시엔 다 가야 하는 건지 알았다. 성적에 맞추어 내가 살던 지역의 대학에 들어갔다. 과는? 엄마가 어디서 들었는지 ‘기계과’가 무난하다고 가란다. 그리고 기계과 들어가서 4년 동안 다녔다. 그리고 취직을 한다. 여기까지가 무난한 포석(바둑에서, 중반전의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벌여 놓는 일)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건에 공대 중에서는 기계과가 제일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 들어가서 보니 공대는 기계과를 우선으로 뽑는 경향이 많았다.
군대생활을 시작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치고, 인생에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1년 내내 공부만 하는 것도 힘들다) 온종일 시험을 쳐본 게 인생에 처음이었으니…. 대학생이 되고, 별생각 없이 수업 듣고, 술 먹고, 집에 가서 자고 1년을 살다 보니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군대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도 신의 아들이 아니므로 군대에 가야 했다. 이때부터 난 미래를 준비한 거 같다. 2000년도에 학원비 100만 원을 내고 자동차정비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특기병으로 군대를 지원하고 보름 만에 군대에 갔다. 강제적인 조직 생활은 군대가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군대 생활 즉, 조직 생활에는 미숙한 나였다. 적응하지 못하고, 선임들이 욕해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귀를 막으며) 아…. 아…. 안 들린다. 니는 씨불여라.’라고 생각했다. 봄 오면 여름 오더라. 여름 가니깐 가을 오더라. 4계절이 2번지나니 그래도 병장으로 제대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통령은 노무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면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 대통령이 나에게 가장 좋은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나 때는 2년 2개월 군대 생활을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군대 생활 2년이었고, 그 혜택을 처음 본 게 나다. 2년 2개월에서 일주일이 빠진 군 생활을 했다.
군 생활 중에 나는 미래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봤다. 교과서 외에는 평소에 책을 멀리멀리 하던 나는 군대 내 도서관에 있는 책 2권을 빌렸다. 하나는 주식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경매 책이었다. 주식은 현란한 챠트 설명을 짜~악 적어놨었는데 모든 게 그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 주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부동산 경매 책에는 권리분석을 짜~악해 놨다. 이건 더 심하다. 검은색은 글이고, 여백은 하얀색이었다.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 대학생들은 주식도 공부를 많이 할 것 같지만 나 땐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냥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저축 많이 해서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대학진학률이 80% 정도라고 해서 군대 온 사람들도 거의 다 대학생일 줄 알았다. 특기병이라서 그런지 대학 다니다가 군대 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무실에 몇십 명이 모였는데 행보관이 물어본다.
“대학 다니다가 군대 온 사람들 손들어봐!”
내 기억으론 40%로 손들었던 거 같다. 그러자 행보관 왈
“야 이 시 xx 들어 전문대 손 내려~”
손든 사람의 절반이 손을 내린다.
학력이 높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고졸 정도였다. 특기병들이라서 공고 출신들이 많았다. 나는 자격증도 있고, 대학재학 중이었지만 자동차 수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때 스패너 들어봤던 사람들이었다. 나만큼 볼트, 너트 못 푸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공부는 다 싫어하던 사람들이 온 거다.
정비부대라서 자동차 자격증 취득을 할 기회가 왔다. 자격증 필기는 스스로 공부해서 시험 치는 것이고, 필기합격을 하면 군부대 안에서 집채 교육(교육자들을 모아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공부하는 형태)을 하고 거기서 실기시험을 치는 구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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