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찬 미래의 공무원 생활을 꿈꾸다.
40대가 되고 나서 나는 구청에 취직했다. 9급 공무원이 되었다. 평일 오후 4시에 임명장을 받으러 오란다. 웬 4시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엔 신규 공무원과 진급한 공무원이 모여서 임명장을 받고, 해당 부서에 가서 과장님을 만났다. 내일부터는 출근이고 과장님과 짧은 면담을 거치는 동안 다른 직원 몇 명이 와서 무슨 동의서 같은 것을 사인하라고 한다. 첫 출근도 아직 안 했는데 뭐 이렇게 바쁘게 하려고 하지? 공무원은 느긋하게 일해도 되는 거 아닌가 뭔가 이렇게 바쁘게 하려고 하지라는 생각만 하다가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인데 별 일 있겠냐며 긍정적이고 앞으로 미래를 생각했다. 현재의 월급은 낮지만 일과 삶의 균형도 찾을 수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면 주말이 있는 직장이다. 그리고 정년도 보장된다. 이제 조금 편안하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을 깨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날부터 삐걱거리는 공무원 생활
근무 첫날. 보통 회사에서는 컴퓨터 담당자가 있다. 컴퓨터를 세팅하고 ID와 비번을 설정하고, 컴퓨터만 켜면 프로그램이 다 깔렸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신입사원이 컴퓨터를 쓰는데 무리 없게 미리 준비해 준다. 여기는 각자도생이다. 남이 쓰던 컴퓨터를 받아서 쓰기 때문에 자리 변경으로 인해 컴퓨터를 연결하고 켜야 한다. 뭘 하려는데 나는 사용자격이 없어서 확인이 불가하다. ‘아 어제 받은 동의서가 그거구나!’ 구민의 정보를 개인 열람하거나 등기부 등본 등 서류를 확인하는데 각각의 동의서를 받고, 다른 사람이 허가와 동의 등을 얻은 다음에야 나의 열람이 가능하게 된다. 프로그램 이름도 기억도 나지도 않지만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서류 열람하는 사이트, 돈을 지출하는데 승인받는 사이트, 서류 결재 올리는 사이트 등 몇 개의 사이트가 다 따로 되어 있었다. 어디서 들어가서 확인하고, 승인된 문서는 어떻게 배포하고 정신적 혼란이 왔다. 담당 메일도 왔고, 팩스는 팩스 기계로 오는 게 아니라 컴퓨터 어디서 찾아서 받아봐야 하는데 퇴사한 지금까지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첫날에는 그럭저럭 지나갔다. 내 자리에 일했던 직원이 연차를 써서 오늘 출근하지 않아 그냥 몇 가지 시키는 단순한 일만 하다가 퇴근했다. 나도 내일부터 인수·인계받아서 하지 뭐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나는 공무원의 세계를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인수해준 사람은 나랑 같은 시험을 친 기수로서 나보다 3개월 전에 입사한 직원이었다. 사람이 좋아서 나름 아는 것은 하나씩 나에게 가르쳐줬다. 하지만 각자 할 일이 있어서 따로 인수인계하는 시간이 없었다. 몰라도 무조건 해결해야 했다. 일반회사에서는 보통 1달의 OJT 시간을 준다. 업무를 익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보고, 주위 사람 얼굴도 익히고 그러고 나서 일을 조금씩 시킨다. 그러나 공무원의 세계는 그런 게 없다. ‘오늘부터 여기에서 근무하세요’ 그다음부터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모르는 것은 나의 전임자 또는 선배들한테 물어봐 가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반회사에서도 맨땅에 헤딩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맨땅이 아니다. 쇠망치에 헤딩해서 쇠망치보다 강해야 한다.
팔다리 묶어놓고 뛰라는 공무원생활
왜 공무원이 일을 못 하고 있는지 몇 가지 검증하고자 한다.
우선, 모든 문서는 공문으로 작성해야 한다. 예로 건축과에서 농막 신고가 들어와서 해당 토지에 농막을 갖다 놓아도 되는지 검토를 하고, 건축법 외 나머지 법률을 토지이용계획확인서에 의해 타부서에서 검토할 사항이 생긴다. 예로 문화재 관한 사항은 문화체육부, 그린벨트에 관한 사항은 도시과, 공원 용지에 해당한다면 공원녹지과 등등 타부서에서도 확인해야 하는 사항을 발견한다. 그러면 일반 사기업에서는 해당 담당자가 타부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확인을 한다. 전화로 확인해도 되지만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문서로 받아놓는 방법이 이메일이다. 그럼 공무원은 어떻게 할까? 건축과에서 공문을 타부서에 보낸다. 공문을 작성해야 하고, 과장까지의 결재, 결재 후 공문의 발송, 수신부서의 수신 및 담당자 배정, 담당자 회신을 작성할 때도 그 부서의 과장 결재 후 건축과 문서 수신하고 문서 수신 담당자가 건축과 담당자에게 수신. 어렵다. 급할 땐 사기업에선 5분이면 끝날 일이 공무원은 문서 발신 및 수신으로 보통 2~3일 또는 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농막 신고 처리 기간은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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